1362년(공민왕 11)에홍언박(洪彦博)과 유숙(柳淑)이 주관한 과거에박의중(朴宜中), 정도전(鄭道傳)등과 함께 급제하였다. 1373년(공민왕 22)에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에 올랐을 때 왜구를 퇴치할 계책을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하였다.우왕(禑王)때에는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바카라 시뮬레이션(政堂文學)에 올랐다.
창왕(昌王)을 폐위하고공양왕(恭讓王)을 세울 때 모의에 참여하여 1390년(공양왕 2)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정난공신(定難功臣)의 호를 받았고, 1392년(공양왕 4) 판삼사사(判三司事)로서 지공거(知貢擧)를 겸하였다. 이해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될 때 일당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태조(太祖)의 특명으로 1396년(태조 5)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으로 복직되었다. 아울러 계림(鷄林: 현, 경상북도 경주)을 본관으로 받고 연산부원군(燕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398년(정종 즉위년)정종(定宗)이 즉위하자, 계품사(啓禀使)로 명(明)나라에 가던 도중 명나라 태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진향사(進香使)로 임무를 바꾸어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설장수는 전후 1373년을 시작으로 이후 총 8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는 그를 “고가(高家)의 자손”이라면서 직접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양국의 정세 등을 논하였다.
시와 글씨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직해소학(直解小學)』·『운재집(芸齋集)』이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