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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때 의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은 소백산에 들어와 국망봉 아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초막을 짓고 터전을 찾던 중 마침내 봉황산 기슭에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처음 소백산에 와서 초막을 쳤던 자리에도 사찰을 열었는데 이것이 바로 초암사이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의상은 왕명으로 소백산 기슭에 초암(草庵)을 짓고 있었는데, 매일 지붕의 서까래가 없어졌다. 의아하게 여긴 의상이 찾아보니 서까래가 인근 숲 속에 쌓여 있었다. 이에 주위의 풀을 뜯어 초막을 지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본래 초암사가 있었는데 여기서 수도를 하던 의상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도 한다. 승전(僧傳)에는 성승(聖僧)이 바윗굴에서 나왔으므로 성혈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그 굴이 있다. 『재향지(梓鄕誌)』에 의하면 성혈사는 초암사 동쪽 골짜기에 있는데 초암사와 같은 때 창건했다는 메이저 바카라 사이트을 전한다. 성혈사는 초암사와 부석사의 사이에 있으며 바위굴은 절 아래 30m 지점에 있다. 이 절의 비로자나불상은 9세기 무렵 조성되었다. 한편 조선 중기 이후에 편찬된 문집류에 이 사찰이 언급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황(李滉)과 허목(許穆)의 문집, 특히 조보양(趙普陽)의 『팔우헌집(八友軒集)』과 김진동의 『소암집(素巖集)』, 권정침의 『평암집(平庵集)』에 의하면 성혈사에 승려 와운당(臥雲堂) 신혜(信慧)가 주석하였던 사실을 살필 수 있다. 최근에 발견된 기문에 의하면, 이 절의 나한전은 1553년(명종 8)에 창건해 1634년(인조 12) 각용이 중창했고 1742년 7월부터 1746년까지 학순이 중수하였다. 1883년 아미타회상도가, 현대에 들어와 1954년에는 칠성도와 산신도가 조성되었다. 초암사와 성혈사를 같은 사찰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 둘은 다른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