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은 마르코. 서울 출생. 우리나라 사람으로 세 번째로 사제서품(敍品)을 받았다. 가세가 여의치 않아 늦게까지 교육의 혜택을 입지 못하다가 19세인 1882년에 블랑(Blanc) 신부가 한한학교(韓漢學校)를 개설하자 이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1883년(고종 20) 4명의 신학생과 함께 일본·홍콩·싱가포르를 거쳐 페낭(Penang) 신학교에서 유학했다. 그곳에서 9년 정도 공부한 후 1892년 7월에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계속 수학하고, 1896년 4월 26일에 강성삼(姜聖參)·정규하(鄭圭夏) 등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그 해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 선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목하면서 안성·양성·용인·진위·수원·이천 등지의 전교활동을 주관하였다.
34년 동안 이 지방에 천주교 신앙을 심어주었고, 지방민들에게 양잠을 장려하였다. 한편, 미리내에 레고카지노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묘소가 있었기에 이곳에 경당(經堂)을 세워 김대건신부 현양사업을 일으켜 천주교인들의 신심을 굳히는 데 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