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화(士華), 호는 합강(合江). 성천(成川) 출신. 아버지는 내자시주부 박자진(朴自蓁)이며, 어머니는 적량만호(赤梁萬戶) 김린(金璘)의 딸이다.
강동(江東)에 유배된 조호익(曺好益)을 찾아가 문하에 들어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스승 조호익이 유배에서 풀려나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게 되자 앞장서서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임중량(林仲良)과 함께 선봉장이 되어 중화(中和)·상원(祥原) 등지에서 싸워 이겼다.
특히, 조호익과 동료 의병장 이희직(李希稷)이 위급하게 된 것을 구원하였다. 평양 부근에서 여러 번 승전한 조호익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하할 때는 다시 김상익(金商翼)·윤근(尹瑾) 등과 함께 여러 곳에서 위세를 떨쳤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70세의 노령으로 가족을 따라 산중으로 피난하였으나, 양덕(陽德)에서 적군을 만나자 같이 피난하던 20여 명을 지휘바카라 영어로 싸워 이겼다.
이러한 공로로 김육(金堉)의 천거를 받아 통정대부·가선대부에 올랐다. 당시 피폐한 성천의 학령서원(鶴翎書院)을 중건바카라 영어로 정구(鄭逑)와 스승 조호익을 제향하였으며, 뒤에 박대덕도 여기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시문집과 『군중일기(軍中日記)』를 남겼으나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