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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부 서린방(瑞麟坊 : 현재 종로구 세종로 1가 부근) 의금부 옆에 있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관제를 정할 때 고려의 전옥서를 답습하여 관원을 정하였다.
관원으로 영(令) 2인, 승(丞) 2인, 사리(司吏) 2인을 두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 『경국대전』 체제가 정비되면서 종6품아문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기까지 계승되었다.
관원으로 제조 1인은 형방승지가 겸임하였으며, 실무관리로 주부(主簿, 종6품)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 참봉(參奉, 종9품) 1인과 서리(書吏) 4인 및 나장(羅將) 30인을 두었다가 뒤에 서리는 6인으로 증원되었고, 나장은 5인으로 줄었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어 전옥서와 의금부의 죄수를 살폈는데, 예종 때 전옥서 죄수의 가쇄(枷鎖)가 풀려 있어 매일 죄수를 검찰할 책임이 있는 형조월령낭관(刑曹月令郎官)과 전옥서의 주부 및 참봉이 직무태만으로 의금부에 수금되어 국문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전옥서는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는 곳으로 오늘의 교도소와 같으며, 그 상부기관인 형조는 매월 월령낭관을 교대로 파견하여 날마다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를 검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