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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선암사(仙巖寺)에 관한 사항은 『고려사(高麗史)』에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인 1308년(충선왕 복위년) 10월 충선왕은 궁궐 중문에 다음과 같은 방을 붙이게 하였다. “왕륜사(王輪寺) 주지 인조(仁照), 용암사(龍岩寺) 주지 용선(用宣), 선암사 주지 약굉(若宏) 및 최단(崔湍)·권한공(權漢功)·김지겸(金之兼)·김사원(金士元)·최성지(崔誠之)·환이(桓頤)·오현량(吳玄良)·강방언(姜邦彦)·이진(李珍)·강융(姜融)·조통(趙通)·조적(曹頔)·조석(曹碩)·최현(崔玄)·정자우(鄭子羽)·최중공(崔仲公)·문점(文坫)·이백겸(李伯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특별히 부르지 않는 한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서 언급된 권한공이나 김지겸, 최성지 등은 대부분 충선왕이 복위한 이후 요직을 차지했던 국왕의 측근 세력이었다. 이러한 왕의 측근 반열에 선암사의 주지였던 약굉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당시 이 사찰이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음을 추정케 해준다. 충선왕대 이후의 선암사에 관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