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토토(白綿紙)는 조선 후기 이후부터 사용하였던 종이의 명칭이다. 정조(正祖)의 일기『일성록(日省錄)』(1777년 10월 24일)에 따르면 당시 이조참의로 있던정민시(鄭民始)가 주1로 거둬들이는 카지노 토토 중 품질이 떨어지는 종이가 섞여 있다고 정조에게 보고하자, 정조가 카지노 토토를 세심하게 가려주2명을 내렸다. 당시 카지노 토토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민시는 카지노 토토(白面紙)라 하고 정조는 카지노 토토(白綿紙)라고 한 것을 보면 둘 다 같이 통용되던 동일한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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